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렘 33 : 2 ~3)
우리는 항상 크고 작은 고난에 우겨 싸이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과 비난을 받고 모함을 당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배반과 거꾸러뜨림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앞이 캄캄하며 삶의 기쁨이 사라지고 죽고 싶은 심정이 될 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울부짖으며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체험을 하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큰 위로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예레미야 33장 2절로 3절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조용히 묵상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소곤거리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했었습니다. 시편 91편 15절에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간구를 듣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 간구라는 것은 마음이 애타서 끌어 오르는 간절한 부르짖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교훈할 때도 보통말로 교훈할 때가 있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우리가 응답받는 기도는 그냥 찬양하고 묵상기도하고 그저 소곤소곤 하는 기도로 하라고 말씀하지 아니하고 부르짖으라. 간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간구하는 것은 결국 부르짖고 기도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간절한 열심히 배속에서 끌어 올라서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 보좌에 기도가 상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부터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어야 우리의 부르짖음을 받아서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부르짖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간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사는 하나님이 무조건 간섭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의 부르짖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일을 행하시고 일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로 나와서 기도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저 교회에 나와서 가만히 있으면 무거운 짐이 벗겨지고 쉼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긴급구조요청을 할 때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무거운 짐을 진자들이 주님께 짐을 내어 놓아 쉼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나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 와서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예가 우리 구약성경에 보면 많이 있습니다. 자식이 없어 브닌나로부터 괴로움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 앞에 나아와 벗어낸 한나의 기도,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술이 취한 줄로 알았습니다. 한나가 얼마나 애끓는 간장을 가지고 기도를 했던지 말이 막혀서 목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니까 입술만 덜썩 거렸죠.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삼상 1:12~13) 기도에 너무나 깊이 몰입해서 취한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애절하고 간절히 부르짖다 보니까 말문이 막혀서 입술만 덜썩거리는 간절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 기도는 곧장 응답을 받아서 한나에게 하나님이 귀한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간절한 기도, 속에서 끓는 기도를 하나님은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또 애간장이 타도록 기도를 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돈과 두로땅에 갔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헬라 여인 수로보니게가 주님께 나와서 "내 딸이 귀신 들렸으니 고쳐 달라"고 간청을 했었습니다. 주님이 들은 채 만 채 했습니다. 이 부인은 제자들을 붙잡고 하소연 했습니다. 제자들이 "저 부인이 저렇게 간절히 구하니 주님께서 도와주시지요." 주님께서 "나는 이스라엘에 잃어버린 자에게 밖에 오지 않았다. 아직 이방인의 때가 오지 않았으니 도와주지 못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주님 가는 앞길을 막고 꿇어 엎드려서 "주님이시여, 우리 딸이 귀신 들렸사오니 고쳐 달라"고 했을 때 주님이 굉장히 모욕적인 대답을 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는 주지 않는다. 너는 개 같은 여자다. 너의 기도는 응답될 수 없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말을 들었을 때 분노하고 일어나서 뒤도 안돌아 보고 갈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에 소원이 있었는지 "옳소이다. 나는 개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자녀들이 먹는 밥상 밑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잡아먹으니 나 부스러기만 좀 주십시오." 얼마나 간절했기 때문에 그 모욕적인 언사를 해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이 간절한 호소를 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귀신이 나갔던 것입니다. 또 성경에 보면 거지 바디매오가 몸부림치는 기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지나갈 때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지라. 거지가 동냥을 하다 말고 지나가던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물으니까 나사렛 예수가 네 앞을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당장 동냥 받던 그릇을 던져 버리고 일어나서 동서남북을 향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밀치고 강제로 앉혔습니다. "이 장님 거지야, 너 같은 놈이 부르짖는다고 들어줄 리가 있느냐? 잠잠하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뛰며 꿀리며 간절한 호소로써 애타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가시다가 말고 발을 중지하시고 돌아보시면서 "그를 내게로 오라"고 했었습니다. 그가 뛰어갔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 해주기를 원하느냐?" "주님,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그 장님이 눈을 뜨고 만 것입니다. 몸부림치는 기도, 많은 주위의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잠잠하라고 그렇게 억압을 해도 아랑곳없이 부르짖는 기도, 이것이 바로 통성기도요, 애절한 기도요, 간절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라'는 말은 히브리어 '카라'에서 나온 말로서 '절규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경주장에서 달리는 선수들은 골인점이 눈앞에 보이면 속도를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오직 골인 점을 향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죽도록 뛰는 것입니다. 남은 힘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기진맥진 할 때까지 뛰는 것입니다. 바로 부르짖는다는 의미는 그와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조금도 몸속에 힘을 남겨놓지 말고 기진맥진 할 때까지 전력을 기울여 부르짖는 것이 바로 부르짖는 기도인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 그것이 하늘을 감동시키고 마귀의 일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술이 취한 줄로 오해 받을 정도로 간절히 기도한 한나와 애간장 타듯 기도한 수로보니게 여인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간절히 부르짖은 바디메오의 기도는 한결 같이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이 이상 더 지나면 힘이 지쳐서 기절할 것 같은 그러한 상황까지 기도를 하면 그 기도는 하늘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보좌를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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